길고 긴 횡보의 나날들
벌써 4월. 뜨거웠던 1월이 지나간 뒤 코스피 횡보세가 3개월 동안 지속되고 있다. 물린(?)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힘든 시간일 것이다. 나도 살짝 물렸다.(아파라) 코스피에 대한 전망은 사람들마다 참 다르다. 완만한 하락세가 쭉 이어질거라는 비관론에서부터, 다시 한 번 강렬한 랠리가 시작될 거라는 전망까지. 대세론이 없으면 판단이 힘들어지고, 판단이 없으면 행동을 할 수 없게 된다.
나는 올해의 남은 기간은 코스피가 아니라 미국의 시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근거는 코스피가 오랜 시간동안 횡보한 원인과 같다. 그리고 이 오랜 횡보의 원인은 우리의 1월이 왜 뜨거웠는지를 돌아보면 알 수 있다.
1월이 뜨거웠던 건 외국인 때문이었다.
1월 초,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코스피가 역사적인 랠리를 벌일 때 사람들의 관심은 이른바 '동학개미'라 불리는 개인 투자자들에 있었다. 실제로 증시 대기자금이 70조 가까지 몰리면서 거래량이 급속히 증가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 흐름이 2주 가량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외국인 자금이 도화선을 제공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원화가 매우 강세였는데, 환차익을 노린 외국 자본이 이머징 시장 중에 가장 양호한 펀더멘탈을 가지고 있었던 우리나라에 물밀듯이 밀려왔던 것이다. 외국인은 대부분 인덱스 펀드로 주식을 사기 때문에(한국 주식시장 자체를 사는 것) 코스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삼성전자 주가가 가파른 랠리를 펼친 것이다. 주식시장에서 개인들이 보이는 보편적인 움직임이 '달리는 말에 올라타기'인데, 안그래도 관심도가 높은 상황에서 랠리가 펼쳐지자 개인들의 자금이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투입되었다. 6만원대였던 삼성전자가 한달도 안 되는 기간동안 9만원을 찍고 내려오는 진풍경은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원화 강세가 어느정도 진정되자 외국인이 매도세로 돌아섰고, 여기에 더해서 매도의 끝판왕인 연기금이 일관되게 주식을 팔면서(정말 너무 일관되서 지금까지도 놀라는중) 지금과 같은 횡보장이 만들어졌다. 개인들은 여전히 매수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외국인의 자금이 들어오지 않는 한, 1월과 같은 랠리는 다시 보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코스피와 미국 주식의 미래는 외국인(크게 보면 유럽과 미국 자금)이 어디로 향할지를 가늠해보면 될 것이다.
외국인들의 돈, 코스피로 돌아올까.
일단 외국인이 1월처럼 우리나라에 들어올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앞서 말했듯이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원화 강세 = 달러 약세 때문이었는데, 지금은 환율이 많이 오른 상태다.
작년 말 까지만 해도 올해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이머징 시장이 매우 강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미국에서 대규모 부양책을 실시하면서 많은 양의 달러를 찍어낼 것이고(실제로 그렇게 하는 중이다.) 자연히 달러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원화가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미국의 백신 접종이 빠르게 이루어지면서 경제 자체가 빠르게 회복되는 중이다. IMF는 미국의 성장률을 6.4%로 전망하는 의견도 냈다. 작년처럼 실물 경기는 안좋은데 유동성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실업률이 감소하고 소비재 수요가 증가하는 등 실제 경제 자체가 성장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바이든의 부양책이 더해졌는데(1.9조 달러), 내용을 보면 국민들에게 현금으로 지급하는 '미국판 재난지원금'을 비롯하여 인프라 투자, 친환경 산업 진흥, 사회 안전망 구축 등에 쓰일 것으로 예정되어 있다. 친환경 정책은 시설투자가 필요하므로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가 있고, 도로를 비롯한 인프라 투자 역시 일자리 창출과 토건산업의 부흥을 예고하고 있다. 사회 안전망 구축은 미국의 극심한 양극화에 대한 처방인 동시에 민간 소비를 촉진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앞으로 1월과 같은 '원화 강세 = 달러 약세'가 다시 도래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에서의 소비 증가(개인들의 소비 뿐만 아니라 부양책에 사용될 자재, 인력 등에 대한 수요를 모두 포함하는 것)는 '미국 내 달러의 수요'를 증가시키고, 이는 달러 가치를 상승 시킨다. 달러가치의 상승은 달러 강세 = 원화 약세를 뜻한다. 외국인의 돈이 미국으로 돌아갈 조건이 구비된 것이다.
종합하자면
1. 이른바 '빅테크' 기업들의 성장이 여전한 상황(구글이 이번에 어닝 서프라이즈.)에 화학이나 건설, 레저, 유통 등을 비롯한 '경기민감주'의 부활이 더해져 미국 증시의 가능성이 확연히 높아졌다.
2. 미국에서 달러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 몸값이 올라간 달러가 미국으로 회귀하는 중이다.(외국인 자금의 미국 집중화)
3. 미국 개인들의 주식투자 열기도 뜨겁다. 미국은 우리와 달리 현찰로, 성인 개개인에게 지원금을 지급했고, 미국인들의 저축률도 높은 수준이다. = 유동성이 풍부하다.
올해의 남은 기간은 미국이 세계 증시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외국인은 언젠가 코스피에 귀환하겠지만,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 미국의 회복이 하루이틀 사이에 끝나진 않을테니까. 지금 펼쳐지고 있는 미국 경제의 과열이 조금이나마 진정되어야 코스피의 차례가 올 것이다. 돈은 늘 돈을 따라다니게 되어 있다. 내 주머니의 돈도 함께 실어 보낼 차례다.
* 단, 연기금의 매도가 다소 조정되었으므로, 약간의 상승은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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