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졌다. 큰 차이로. 20살 첫 선거부터 민주당과 정의당을 지지해 온 진보층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선거는 참으로 아쉽게 느껴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질 만 했고, 져야 했다. 이왕이면 더 크게 졌어야 했다.
후보들이 일으킨 노이즈로 보면, 늘 그렇듯이 국민의 힘 쪽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오세훈의 내곡동 논란, 박형준의 엘시티, 모두 충분히 의심할 만 했다. 게다가 이 둘은 새로운 얼굴도 아니다. 참신한 대안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후보 개인을 뽑는 선거가 아니었다. 민주당에 대한 반감을 표출 할 기회였을 뿐. 국민의 힘에서 누가 나왔더라도 비슷한 격차로 당선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좋았던 그시절
문재인 정권 초기만 해도, 우리 스스로 국뽕에 홀릴 만큼 좋은 뉴스가 많았다. 특히 북한과의 관계 개선은 지겹도록 반복된 좌우 프레임을 드디어 붕괴시켰고,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을 짧은 시간동안 높여 주었기에 국민들에게 준 만족감이 대단히 높았다. 그리고 정권 초반에 이루어 진 여러 인사들, 적폐청산도 좋은 인상을 주었다. 특히 코로나가 창궐했을 때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수준의 대응을 이루어 내면서 진보 정권이 능력도 좋다는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그러나, 변하더라
그러나, 그 이후에 민주당이 보인 여러 행태는 (보수 언론의 가열찬 언플을 감안하더라도) 많은 문제가 있었다. 특히 임대차 3법이 제정되는 과정은 독선적이었다. 임대차 3법이 준비되고 있을 때, 이 법을 가장 많이 반대한 사람들은 주택 보유자가 아니라 세입자들이었다. 세입자들의 반대 논거는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바로 그것이었다. 전세 매물의 감소로로 전셋값이 폭등하고 이것이 집값을 상승시킬 것이라는, 아주 정확한 예측이 그 당시에 이미 제기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민주당의 태도는 '세입자들이 잘못된 언론보도에 속아 잘못 판단하고 있다'는 정도였다. 이 법이 제정되기 전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박주민 의원(이 법의 대표 발의자다)은 바로 위와 같은 취지의 발언을 했었다.
이 법의 내용을 뜯어 보면 민주당의 이중적 태도가 그대로 드러난다. 세입자 보호를 명목으로 법을 제정하면서도 집주인의 재산권을 보호한다면서 집주인과 그의 직계가족이 거주를 원할 경우, 세입자의 전세계약 연장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집주인의 재산권을 직계 가족까지 확대한 것은 사실상 원한다면 집주인들이 세입자의 계약 연장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실제로 그런 일이 많이 일어났지.) 민주당 자체적으로는 세입자 보호라는 정의와 재산권 보호라는 자본주의 원리를 모두 만족시켰다고 자찬했을 것이다. 그 결과는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다.
또한, 이 법이 부동산을 뒤집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코멘트를 하지 않다가 보궐 선거가 불리하게 전개되자 그때서야 사과 멘트를 내놓기 시작했던 것도 기만적이었다. 내몰려서 하는 사과는 진실성이 없다. 최근 임대차법에 대한 민주당의 태도는 아파트 매물이 늘고 거래량이 줄어들면서 주택시장이 안정되고 있으니 지켜보자는 정도로 보인다. (주식투자를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가격 그래프가 한번 요동치면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곡소리가 나는지, 민주당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세입자가 하나도 없어서 그런가) 게다가 그 곡소리의 주인들은 민주당을 열심히 지지했던 3040 무주택 서민들이다. 이들이 느낀 배신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민주당에는 앞으로도 희망이 없을 것이다. (이 나라도 희망이 없겠지)
임대차법 제정을 통해 본 민주당의 얼굴은 이렇다. 엘리트주의에 빠져 있고(너네들이 몰라서 그래), 자기만족에 심취했으며(내가 정의야),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르는 것이다.(시간 좀 지나면 해결돼. 결국 내가 맞아)
나는 이명박-박근혜 시대에 2-30대를 보냈고, 그 시대를 암울하게 기억하는 사람 중 하나다. 그래서 국민의 힘을 지지하는 일은 없을것같다. 10년 전 그 오세훈을 다시 선거에 내보내는 정당 아닌가. 하두 뭘 지어대서 당시에는 '오세이돈'이라고 불렀었다. 그가 세운 광화문의 세종대왕 동상이 얼마나 뜬금없는 것인지. 볼 때 마다 실소가 나온다. 제 2의 이명박을 꿈꾸며 섬세한 계획 없이 자신을 상징할 수 있는 랜드마크를 서울 여기저기에 심어놓던 그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민주당이라면, 오세훈이 나오더라도 굳이 내 시간과 노력을 들여 투표장으로 갈 생각이 없다. 차라리 집에서 하루종일 넷플릭스나 보련다. 민주당 얼굴보다 재미있는 드라마가 여기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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